소렌토에서 포지타노, 아말피를 거쳐 살레르노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여행자들에게 무척 잘 알려진 곳이다. 소렌토에서 버스를 타고 포지타노를 거쳐 아말피까지 하루 코스로 다녀 올 수 있다. 여행하기 수년 전부터 많은 여행잡지나 TV프로에서 충분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본 풍경은 충분히 감탄할만했다.


사실 가기 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많은 매체에서 이 곳을 설명하는 미사어구가 '이탈리아의 산토리니'였기 때문이다. 여행전에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산토리니에서 실망했기에 크게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올때는 당일치기로 스쳐지나야하는 것이 아쉬웠고, 이곳에 숙소를 잡고 머무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 곳의 사진들은 대부분 버스 안에서 찍은 것들이라 차창에 빛이 반사되기도 하고 창에 묻은 먼지 때문에 색이 뿌옇다. 정말 짙은 원색 그대로의 풍경을 담아내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어떻게 이런 곳에 도로를 만들었을까 신기할 정도로 어떤 곳은 절벽을 깎고 어떤 곳은 메우고 다듬어서 절벽 굽이굽이 도록 나있다.





초반에는 절벽으로 난 해안도로를 달리며 절벽과 바다의 풍경에 감탄하게 된다. 똑같은 풍경이 계속되어 지루할 즈음 멀리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포지타노와 몇 개의 마을을 그대로 지나 중간에 내리지 않고 아말피까지 한 번에 가기로 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내용을 쓴 것 같은데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개를 데리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휴가기간동안 비용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가족처럼 살고 있는 반려견들과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대신 이 반려견들은 사람들과 같이 지내기 위한 교육을 상당히 많이 받는 듯하다. 버스안에서 소리를 내거나 큰 몸짓조차 하지 않고 인내한다. 혹시라도 개가 불편한 내색을 보이면 주인이 얼른 달래고 다독인다. 


위 사진의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중년 남성도 도착할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내내 개와 함께 계단에 함께 앉아있었다.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성인들끼리, 친구들끼리도 큰 어려움이 따르는 일인데 이들은 어린 아이들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여행을 해낸다. 여행과 생활을 굳이 나누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 버스에 탄 승객들 중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누구하나 불평하거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아이를 싫어한다고 아이와 함께 타지 않겠다고 할 수 없듯이 반려동물을 누군가의 가족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조차 버스 승차를 거부당하곤 하는 우리나라도 빨리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물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부터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소렌토에서 아말피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 싶은 곳곳에 여러 마을들이 있었다. 더구나 절벽 윗부분만 집들이 있는게 아니라 해안까지 집들이 빽빽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관광으로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절벽 곳곳에 밭과 과수원들이 경작되고 있었다. 


드디어 아말피에 도착했다. 아말피는 한때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와 함께 중세시대 초기 지중해 무역의 중심이었던 역사 깊은 도시이자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도시이다. 그런 도시답게 도시의 규모나 크기에 비해 오래된 성당과 수도원이 많다.



9세기경 건설되었다는 안드레아 대성당


아말피 광장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짧은 시간에 아말피를 둘러볼 것인지, 해변에서 바다를 보고 해수욕을 할 것인지 고민했고 결론은 해변에서 느긋하게 쉬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곳의 지리적인 특성상 규모가 작은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다지 느긋하게 쉴 수는 없었다. 오후 느지막하게 소렌토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포지타노 혹은 알려지진 않았지만 해안가 작은 마을에서 하루이틀 정도 머무르면서 이 곳을 둘러봤으면 좋았을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나폴리 민박집에서 만난 오토바이로 여행하던 친구는 이 곳을 오토바이로 지나오면서 해변에서 이탈리아 친구들과 수영을 하고 점심을 대접받기도 했다고 한다. 운전에 자신있고 해외에서 운전이 꺼려지지 않는 여행자라면 차를 렌트해서 맘 가는대로 다니며 며칠 이곳에서 머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찰스 왕세자와 고 다이애나 비의 신혼여행지로 널리 알려진 카프리 섬은 유럽에서도 유명한 휴양지이다. 소렌토나 나폴리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며칠 머물면서 돌아보면 더욱 좋겠지만 산토리니에서 느낀 고급 휴양지에 대한 실망을 여기서도 느끼기 싫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풍광만 보고 오기로 했다.


카프리로 가는 배를 타기 전 소렌토 항구. 어제보다 파도가 높고 흰 물견이 더 많이 보이는 듯했다.


드디어 소렌토 항을 떠나고 있다. 다행히 물결이 잔잔하다.


얼마나 갔을까 카프리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 가운데 갑자기 솟은 바위산이 이색적이다.

로마시대에 나폴리 근처 봄베이에서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 커다란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카프리 섬도 화산 폭발로 인한 용암이 굳어져 형성되었다고 한다.



카프리 항에 다가가니 여기가 왜 옛날부터 유명한 휴양지였는지 알만하다.


카프리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푸른 동굴로 알려진 바다 절벽에 형성된 동굴인데 이 동굴 안에서 보이는 바닷물이 정말 아름다운 짙은 파란색이라서 카프리 블루라는 색까지 생겼다. 몇 년전 여행 프로에서 보고 카프리에 간다면 꼭 저길 가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직전이었다. 두번째는 곤돌라를 타고 카프리 산에 올라가 내려다 보는 경치다. 먼저 푸른 동굴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찾으러 가다가 카프리의 아름다운 경치에 한참 넋놓고 바라보았다.




카프리 항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먼저 카프리 전역으로 버스들이 다니는, 서울로 치면 환승센터 같은 곳으로 갔다. 거기서 푸른 동굴(GROTTA AZZURRA)로 가는 푯말을 찾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는데 신혼부부인듯한 중국인 커플이 푸른 동굴에 가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기들도 거기에 가는데 오늘이 만조라 동굴안으로 물이 차는 시기인데다 파도가 높아 오늘 투어를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몇 년을 기다려온 목표가 눈앞에 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여튼 버스를 기다렸다가 운전사에게 물으니 정말 그렇다고 했다.


잠깐 허탈함에 정신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여행 4개월째, 맘대로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미 여러 번 체험한 터라 이번 여행에서는 인연이 없는 곳인가보다 하고 포기했다. 두번째 목표였던 곤돌라를 타고 산 전망대로 가기로 했다.


곤돌라가 좀 부실해 보인다. 게다가 산 윗부분에서는 경사도 꽤 가파르다.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을 것 같다.



서서히 카프리 시내가 내 눈높이보다 낮아지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하늘이 비슷하게 짙푸르다. 

수평선이 없다면 어디가 바다고 하늘인지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비슷하게 푸르렀다.


산꼭대기에 가까워지자 경사가 제법 가팔라졌다. 사진에서는 영 경사가 안느껴지지만.



산꼭대기 전망대에서 아득한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물빛이 신비롭다. 작은 요트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카프리 섬은 아름다웠다. 깎은 듯한 절벽과 푸른 숲, 코발트 빛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산토리니보다 카프리의 경치가 훨씬 훌륭했다. 이 풍광을 보면서 멋진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점심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 풍광이 내려다 보이는 나무 그늘에 앉아 마트에서 산 재료들로 숙소에서 싼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이때부터였을까, 물가가 비싸거나 트래킹 등으로 점심을 먹기 어려운 여행지에서는 자주 샌드위치를 만들어 다녔다. 그리고 점점 샌드위치 싸는 실력이 좋아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멍하니 풍광을 바라보다 버스를 타고 해변으로 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해변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방이 절벽이라 모래사장이 있기 어려운 섬이기 때문에 해변은 무척이나 좁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물도 탁했다. 게다가 커다란 새의 사체마저 둥실 떠다녔다. 하지만 경치는 무척 좋았고, 햇살은 살을 익힐듯이 내리쪼였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병을 시켜놓고 망중한을 즐겼다.






떠날 시간이 되어 카프리 항구로 다시 내려왔다. 겨우 반나절 조금 넘는 시간을 머물렀을뿐이라 평가하기에는 마땅치 않지만 적어도 카프리의 경치만큼은 지중해 어느 곳보다 훌륭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곳의 특성상 숙박비와 체류비는 산토리니와 버금가게 비쌀테지만 경치만큼은 산토리니보다 맘에 들었다. 신혼여행객들이 아니더라도 소렌토나 나폴리를 방문한 여행자라면 하루정도 시간을 내어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나처럼 푸른 동굴을 못보더라도 그건 다시 오라는 뜻이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음 일정으로 남쪽으로 내려가 소렌토를 거점으로 카프리섬, 그리고 포지타노와 아말피를 보고 다시 위로 올라오며 나폴리와 폼베이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원래는 좋아하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었던 시칠리아 섬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시칠리아 섬에 대한 여행자들의 안좋은 이야기들을 보고 포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들 중에 한 가지가 되었는데 후에 스페인에서 시칠리아에 다녀온 여행자(나처럼 시네마 천국을 무척이나 좋아하는)에게 유럽 여행중 가장 좋았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역시 여행은 본인이 가보고 느끼고 판단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 근처의 피자집

테이블이 없는 테이크 아웃 피자집이지만 사람들이 엄청 몰리는 곳이다.

피자집 앞에 방석이 수십 개 쌓여있는데 사람들은 피자집 앞에서 이 방석을 깔고 앉아 피자를 먹는다.

도우는 바삭하고 피자 위에 올려진 야채나 재료들은 무척 신선하다.

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곳 피자는 무척 맛있어서 로마를 떠나는 날 아침식사도 여기서 해결했다.


로마에서 소렌토로 바로 내려가기에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서 먼저 나폴리에서 하루를 묵었다. 지금까지는 가능한 한국 민박에서 지내지 않으려 했지만 유럽의 높은 물가를 감안하면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는 민박집이 저렴했기에 나폴리의 한국 민박을 찾았다. 나폴리 가리발디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소나무 민박'은 50대로 보이는 부부(조선족인지 탈북자인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시는데 북한 사투리가 섞여있다)가 운영하는 곳인데 주인 부부께서는 여행자들을 마음 편하게 해주시는데다 식사까지 훌륭하고 여행정보까지 챙겨주셨다. 하루만 묵고 소렌토에 다녀온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자 그러리라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했지만 나중에 다시 갔을 때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폴리에서 버스를 타고 소렌토에 도착했다. 역시 이탈리아 남부의 날씨는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라 눈이 부셔 뜨기 힘들만큼 햇살이 강렬했지만 그늘 아래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비슷비슷한 건물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숙소를 찾아 짐을 풀고 소렌토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소렌토는 특이하게도 해변에서 수십 미터 솟은 절벽 위에 위치해 있다. 계단으로 수십미터를 내려가야 해변으로 갈 수 있다. 절벽 위에서 보면 소렌토 항구의 경치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절벽 아래 해변에는 작은 백사장을 가진 유료 해변이 있었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물빛은 로도스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해수욕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대편으로는 요트들과 페리가 정박하는 작은 항구가 있다. 카프리 섬에 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야 한다.



다시 절벽을 거슬러 올라왔다. 절벽 안쪽에 집을 짓고 살았던 듯한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다.



소렌토에서 특히 유명한 과일은 오렌지와 레몬이다. 지중해 국가들은 대부분 좋은 날씨 덕분에 오렌지와 레몬, 올리브를 많이 생산하는데 소렌토에는 오렌지와 레몬 나무들이 심어진 공원도 있었다.



공원 한쪽에는 오렌지와 레몬과 함께 이들로 만든 술이나 비누 등의 제품을 팔기도 한다.

이탈리아 남부에는 이 레몬으로 만든 술을 파는 곳이 많은데 향은 좋으나 맛은 달고 껄쭉하다.

달지 않고 맑은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다지...


공원 전체에 새콤달콤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


소렌토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다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던 대로를 벗어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해안 절벽이 내륙으로 들어온 곳을 볼 수 있었다. 상당히 높아서 난간을 잡고 내려다보는데 아찔한게 오금이 저렸다. 아마 난간이 부실한 듯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절벽 아래에는 옛날 사람이 살았던 듯 커다란 건물들도 아직 남아있다. 한참 내려다보며 신기해하니 지나가던 이탈리아 아저씨가 재미난듯 웃으며 바라봤다.



소렌토는 유럽에서도 이름난 관광지라 물가가 꽤나 비쌌다. 길가 레스토랑에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은 피자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머물렀던 숙소에 작은 부엌이 있어서 근처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해 먹을 수 있었다. 한번은 매콤한음식이 먹고 싶어서 아껴두었던 라면을 끓였는데 매운 연기가 퍼졌는지 청소하던 처자가 재채기를 계속 해댔다.


경비를 절약하게 해 준 조촐하지만 고마운 숙소부엌


이 날 저녁식사였던 엔초비 피자.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맛이 훌륭했다.

이탈리아 피자의 장점은 무엇보다 신선한 치즈와 토마토, 바삭한 도우인 것 같다.

토핑이 대단치 않아도 충분히 맛있다.


피자로 배를 채우고 숙소 옥상에 올라가니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지중해 근방은 날씨가 맑고 공기가 좋아서인지 저녁놀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스에서 보지 못했던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우연찮게 소렌토의 숙소 옥상에서 볼 수 있었다. 바란다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끔 손해도 보고 포기도 하며 살다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보상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삶도 여행도 이런 것인가보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보르게세 미술관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예약제가 아니었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보니 그 사이에 예약제로 바뀌어 있었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보르게세 추기경이 소장한 미술품들을 그의 저택이었던 곳에서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개인 소장품이긴 하지만 교황의 사촌이었고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인물답게 작품의 수나 중요도에서 로마에서 바티칸 박물간 다음가는 미술관이라고 한다.


특히,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중요한 작품은 베르니니의 조각들이다. 베르니니는 회화작품도 남겼지만 특히나 조각 작품이 유명하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거장인 베르니니는 20대 초에 이 걸작인 조각품들을 완성했는데 교황의 총애를 입은 나머지 본인은 조각가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교황이 주는 수많은 미션들을 완수해야 했다고 한다.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된 베르니니의 작품중에서 특히나 유명한 작품이 '아폴론과 다프네', '페르세포네의 납치', '다비드'이다. 이들 조각상 앞에는 숨을 멈춘채 거의 미동도 없이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 크기가 거대하거나 장엄하진 않지만 돌로 가능한 표현력의 극치가 아닐까 싶을만큼 보는 사람을 감탄하게 하고 경외감마저 생기게 한다.


아쉽게도 이날 찍은 사진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여행이 길어지고 찍은 사진이 늘수록 정기적으로 꼼꼼하게 정리를 해야 하지만 가끔 몰아서 하다보면 어디까지 백업을 했는지, 정리를 했는지 잊어버리고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아래 조각상들의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퍼온 것이다.


아폴론과 다프네(출처, 위키피디아)

퍼온 사진도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조각의 세밀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아폴론이 다프네를 잡는 순간, 다프네의 바램이 이루어져 월계수로 변하기 시작한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다프네의 다리는 나무껍질로, 머리카락과 손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변하고 있다.


페르세포네의 납치(출처, 위키피디아)


지옥의 개들을 데리고 온 플루토(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기 위해 들어올리고 있다. 페르세포네의 표정과 벗어나기 위해 힘이 들어간 발가락, 힘을 준 플루토의 손가락이 페르세포네의 살을 파고드는 표현까지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온다.


다비드(출처, 위키피디아)


가장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에 비해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돌을 던지는 생동감이나 표정은 베르니니의 다비드 상이 훨씬 사실적이다.


미술품은 실제로 작품을 볼 때와 이미지로 볼 때 느낌이 생각보다 더 크게 다르다. 특히나 가장 인기있는 화가 고흐의 작품은 이미지로는 두텁게 채색된 물감의 질감이나 힘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실제 작품을 보면 훨씬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평면적인 회화작품에 비해 조각작품은 비할 바가 아니다. 


20대 초반에 이미 이런 걸작을 남겼던 베르니니가 조각가로 계속 활동을 했었다면 우리는 훌륭한 작품들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로마 시내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로마에서 머물 일정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많았지만 예전에 이미 봤음에도 빠뜨리자니 앙꼬없는 찐빵을 먹은 듯한 찜찜함 때문에 또 한번 바티칸 박물관에 가기로 하고 며칠전 예약을 했었다. 역시나 아침부터 바티칸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십 미터가 넘게 서 있었다. 표를 끊고 입장하면 솔방울의 정원을 통해 본격적으로 박물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솔방울의 정원




박물관에 전시된 로마시대의 유명한 대리석상들은 다시 봐도 대단하다. 특히 라오콘 상은 고통에 찬, 신을 원망하는 듯한 라오콘의 표정과 아버지를 보고 있는 두 아들의 표정이 돌로 조각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사실적이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만큼 뭔가 마음을 때리는 느낌은 없었다.


역시 동물들은 조각상조차 세계 어디에서도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박물관에는 중세 교황의 명에 의해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나뭇잎으로 가려진 조각상들이 많다. 어느 시대나 위정자들은 자신의 주관에 따라 대중의 수준을 평가했고, 교화하고 가르쳐야 할 무지한 존재로 생각해왔다. 불필요한 수많은 법과 규정이 그렇게 생겨나고 만들어져왔을게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렇게 평가되어지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만 이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인간의 신체를 표현한 미술품들의 표본이 되었다는 토르소. 이제는 몸통을 위주로 표현하는 모든 미술품들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며,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단어가 된 토르소 상이다.


라파엘로의 아네테 학당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걸작 조각품과 미술품 중에서도 회화로 특히 유명한 세 가지를 꼽으라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두 작품은 보호를 위해 촬영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 아테네 학당은 자신의 모습을 비롯해 많은 유명 인물과 위인들의 모습을 그림에 반영했기 때문에 얼굴을 보고 그 위인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가장 다비드다운 다비드 상. 성서에 나오는 다비드는 어리고 약한 소년인데 대부분의 미술품에서 표현된 다비드는 건장하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그려지고 있다. 위에 있는 조각상이 성서 그대로를 표현한 다비드 상이 아닐까 싶다.



적장을 유혹해 목을 베었다는 유디트. 

잔다르크 이전의 가장 강한 여성상이며 수많은 미술작품으로 다양하게 표현된 여성이다.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려면 위와 같은 둥그런 계단을 걸어내려와야 한다.


바티칸을 지키는 그 유명한 스위스 근위대


산 피에트로 대성당 입구에서 본 광장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내부


미켈란젤로의 또다른 걸작 조각품, 피에 타


성당 내부의 베드로 상. 베드로의 발을 만지며 복을 기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발을 만졌는지 발과 발가락이 닳아서 맨들맨들하다.




성당 지하 보관소로 내려가는 입구. 1대 교황인 베드로부터 역대 교황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베드로의 상징물, 열쇠

성서의 성인들마다 각자 그를 나타내는 표식을 가지고 있다.

성화들에 표현된 성인들은 그 표식을 가지고 누구인지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에게 친절한 스위스 용병들


스위스 근위대는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침입으로부터 교황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용맹함을 인정 받아 현재도 바티칸과 교황을 지키는 유일한 군사조직으로 남아있다. 어린 아이들의 사진 요청은 웃으며 받아들이더니 그 부모들의 사진 요청은 근엄하게 거절했다.


예전에 왔던 곳이라 꼼꼼히 보기보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유명한 작품 위주로 관람했음에도 광장을 나오니 해가 많이 기울어있었다.


유럽의 강들은 우리나라처럼 계절에 따라 수량 변화가 크지 않아서인지 강폭이 좁다.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의 산탄젤로 성


로마를 떠나기 앞서 제대로된 파스타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검색하여 나보나 광장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훌륭한 맛이지만 내가 만든 김치찌개와 유명 식당의 김치찌개 정도의 차이를 넘는 그 이상의 뭔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정도라면 국내에서 수만원을 주고 먹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집에서 만들어 먹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밤의 나보나 광장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 혹은 낮의 더위를 피해 나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짙은 남색으로 물든 하늘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날이었다.



빠뜨리자니 아쉬워서 다시 갔던 바티칸 박물관. 한 번 방문했던 여행자이고 미술품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재방문보다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곳을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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