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는 무작정 오래 있을 것이 아니라면 여행의 포인트를 잡는 것이 좋다. 왠만한 여행자라면 하나하나 다 보기에는 시간이 모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에 관심있는 여행자라면 미술관, 박물관을 중심으로, 관심이 역사분야라면 박물관과 고대 로마 유적을 중심으로 관심 포인트를 좁혀야 나중에 꼭 가보려고 했던 곳을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로마에는 볼만한 것들이 수없이 많다. 그렇더라도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나 콜로세움 등등 몇 가지는 어떤 여행자라도 빠뜨리지 않고 찾게 될 것이다. 이 날은 콜로세움과 함께 지난번에 내부 공사로 볼 수 없었던 카피톨리노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역시 로마를 대표하는 유적답게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짐 검사도 다른 곳보다 더 확실히 하는 듯했다.



콜로세움에 들어가면 우선 1층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영화에서 봤던 고대 검투사들의 경기장을 상상했다면 이게 뭔가 싶게 건물 바닥이 드러나 있다. 이 바닥이 드러난 부분은 경기장의 지하로 검투사들이나 이들과 싸울 맹수들이 대기했던 지하다.


콜로세움은 잠실 주경기장과 맞먹는 7만명이나 입장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으로 원래는 겉면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호화롭고 아름다운(그러나 여기서 행해진 것들은 옳지 않은) 건축물이었으나 후에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 콜로세움의 대리석을 가져다가 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반대편은 일부분을 당시 고대 경기장처럼 복원해 놓고 있다.



콜로세움을 나오면 바로 근처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 있다. 파리의 나폴레옹 개선문의 모델로 크기는 파리의 개선문보다 작지만 1500년이나 더 오래되었음에도 더 아름답다.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을 돌아 베네치아 광장으로 쭉 올라오다보면 위 사진과 같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나온다. 이 기념관 앞을 돌아 올라가면 카피톨리노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이 카피톨리노 광장과 계단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며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로마 시청사로, 좌우 건물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로마시대의 많은 유물들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명한 청동상 '가시를 빼는 소년'이다. 발바닥의 가시를 뽑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소년의 표정과 몸이 너무나 사실적이다.



풍요의 여신 조각상. 고대 이집트의 여신이 로마에서 재현된 모습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중에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으며, 그래서인지 고대에서는 가장 많은 조각작품으로, 현대에서는 가장 많은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헤라클레스.


캄피톨리오 광장에 있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다. 광장에 있던 것은 모조품이고 내부에 전시된 작품이 진품인 듯하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마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전설을 나타내는 유명한 청동상




박물관 창 밖으로는 박물관과 바로 인접해 있는 포로 로마노의 모습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유명한 조각상 '빈사의 갈리아인'. 헬레니즘 시대의 청동조각상을 로마시대에 대리석으로 모작한 것이라고 한다.





현대의 미적 기준과 약간은 다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비너스의 석상


로마시대에 실존했던 인물 혹은 신화속의 인물에 대한 두상이 수없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두상을 먼저 보고 앎직한 인물을 맞춰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어린 시절 유노(헤라)가 보낸 뱀을 목졸라 죽이는 헤라클레스상


캄피돌리오 박물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보니 벌써 해가 많이 기울었다.



로마의 지하철


콜로세움과 카피톨리노 박물관을 다닌 것만으로 몸은 벌써 지쳐버렸고 다리는 쉬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해는 조금 남았지만 앞으로 다녀야할 곳들이 많으니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근처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파스타는 먹어야지 하는 기분으로. 하지만 맛에 비해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이탈리아의 물가는 그리스보다 훨씬 세다.

아테네에서 로마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물론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때로는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바리에 가는 페리를 이용한 후, 육로로 가는 여행자들도 있다. 하지만 느리게 간다고 해서 반드시 저렴하다는 보장은 없다. 유럽은 저가 항공사들이 많고 우리나라의 저가항공과는 다르게 확실히 저가이기 때문에 날짜만 잘 맞추면 100유로 정도에 서유럽의 대부분을 갈 수 있다. 나도 아테네에서 로마로 가는 표를 저가항공사 이지젯에서 저렴하게 예매한 덕에 편안하게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마의 날씨는 아테네보다는 선선했다. 오후 늦게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으로 근처 중국집에서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여행은 다음날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참고로 여행중 한국음식이 먹고 싶지만 찾을 수 없을 때는 조금 아쉽더라도 중국음식으로 대신할 수 있다. 전세계에 흩어져서 살아가는 엄청난 수의 중국 사람들 덕에 대부분의 도시에서 중국 음식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튿날 여행은 산탄젤로 성에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겉모습만 둘러본 후에 로마에서 시간이 남는다면 다시 오기로 했다. 산탄젤로 성에서 나와 걷다보니 유명한 트레비 분수가 나왔다.


로마는 천년 이상 정치적, 종교적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볼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 볼 것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왠만한 것들은 걸어다니며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걷다보면 저녁 무렵에는 파김치가 되기 쉽상이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쉬어가며 다니는게 오히려 더 많이 보고, 제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고둥을 불기 위해 빵빵하게 부풀은 트리톤의 볼이 사실적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더욱 유명해져버린 이 분수는 분수라기보다는 거대한 건축물 혹은 조각 작품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 분수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찾은 관광객들로 밤낮없이 붐비는데 다들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있다가 소매치기 당하기 쉽기 때문에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로마에서도 특히나 조심해야 할 곳이다. 트리톤들이 끄는 마차에 올라선 넵튠의 당당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트레비 분수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스페인 광장이 나온다. 이 곳도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유명해진 곳이다. 사실 이 곳은 그리 유명할 것도 없다. 물론 베르니니가 만들었다는 분수가 있긴 하지만 로마에 산재해 있는 베르니니의 다른 걸작들에 비해서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스페인 광장으로 이름 붙여진 이유도 17세기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니... 다만 이 주변에는 명품숍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 곳을 방문할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스페인 광장의 계단 꼭대기에 위치한 교회

전에 왔을 때는 보수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는데...


다른 유명한 교회에 비해 소박한 꾸밈과 작은 규모가 마음에 든다.



베르니니가 만든 스페인 광장의 분수


수많은 사람들이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되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유럽에서는 개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인기있는 개들이 리트리버 종이었다.

이 녀석들은 온순하고 착해서 같이 다니기도 쉽고 큰 덩치지만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귀여움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광장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명품숍을 지나 판테온으로 나왔다. 로마에서 가장 독특한 건물인 판테온은 예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하지 않을 때는 신전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모양 자체가 특이해서 뒷쪽은 둥근 원통형 건물에 앞쪽은 전형적인 신전의 입구 모습을 하고 있으며 원통형 건물의 지붕은 거대한 돔으로 돔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신전으로 만들어진 이 건물이 파괴되지 않고 남은 것은 성당으로 용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내부에는 이탈리아의 유명인들 라파엘로와 같은 예술가와 이탈리아의 왕들의 무덤이 있다. 이 곳 역시 무척이나 유명한 곳이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성당과 무덤을 겸하고 있는 판테온의 내부


판테온 내부의 거대한 돔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지금은 건축기술의 발달로 이보다 더 큰 돔들이 많지만 판테온이 지어질 당시의 기술로는 획기적이었다고 한다. 돔을 만든 방법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동전을 섞은 흙을 쌓고 그 위에 돔을 만든 후에 사람들에게 흙을 파내고 동전을 갖게 했다고도 한다.


라파엘로의 무덤 앞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기도 힘들었다.


판테온에서 조금 걸어나오면 나보나 광장이 나온다. 나보나 광장은 길쭉한 모양인데 그 이유가 고대 로마시절에는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장 주변으로는 많은 까페들이 있고, 거리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나보나 광장이 더욱 유명해진 이유는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보나 광장은 밤에 더욱 운치있는데 며칠 후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복잡한 로마의 골목길 탓에 우연히 나보나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물론 어두워서 분수의 조각상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진 않지만 훨씬 분위기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오늘 돌아다닌 곳곳에서 베르니니의 분수나 조각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실제 로마는 베르니니의 도시라고 할 만큼 베르니니가 설계하고 만든 건축물, 분수, 조각들이 수없이 많다. 사실 베르니니는 조각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워낙 다재다능한 능력을 지녔기에 조각가로서보다 교황의 명에 의해 로마 곳곳에 건축물들을 만들고 도시를 설계했다고 한다. 베르니니의 조각가로서의 명성은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몇몇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들은 그가 20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올만큼 생생하다. 미켈란젤로의 조각보다 나에게는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된 베르니니의 조각들이 더욱 마음 깊이 남아 있다.



하루종일 걷고나서 숙소로 돌아가다 다리 위에서 본 테베레 강, 멀리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보인다. 


로마는 두 번째 방문이었고 오늘 갔던 곳들도 이전에 가봤던 곳이었지만 다시 와도 로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려면 로마는 가장 나중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로마를 먼저 보게되면 다른 곳들이 시시해진다는 말이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유럽의 역사나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말에 찬성할 것이다.



카이로에서 아테네로 돌아오며 숙소를 아테네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예약했다. 지난번 산토리니에서 밤늦게 아테네에서 도착했을 때, 아테네 여행의 중심이 되는 그 거리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불이 꺼져있어 맘놓고 돌아다니기에 위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심가로 가려면 조금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지만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이나 가게들이 있어서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짧은 기간이라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짝 들여다보고싶은 여행자라면 반드시 숙소가 관광지 주변에 있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중심가에 비해 같은 가격이라도 숙소의 질도 높았다.


다음날도 아테네는 쨍한 하늘이 눈부실 정도로 맑았다. 지중해 연안이 대부분 그렇듯이 봄부터 이미 무척 덥고 건조한 날들이 계속된다. 6월 초였지만 아테네의 한낮 기온은 벌써 30도를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 더운 날씨지만 아테네에 머무르는 짧은 기간동안 그 유명한 아크로폴리스는 봐야겠기에 일찍부터 숙소를 나섰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초입에 고대 그리스의 대극장이 있다. 관객들의 좌석과 무대 일부만을 고쳐서 아직도 오페라나 클래식 연주회가 열린다. 내가 방문한 이 날도 대규모 오페라 공연을 앞두고 무대장치를 설치하는데 분주했다. 밤에 이곳에서 보는 공연은 정말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시기가 맞아 그런 기회가 있다면 꼭 보고싶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언덕 정상에 올라서니 아테네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도시 가운데에 우뚝 솟은 이 언덕에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에게 바치는 신전을 짓고 도시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높은 건물들이 삐죽하게 솟아있지 않은 유럽의 이런 도시 풍경이 좋다.




드디어 파르테논 신전 앞에 섰다. 역시 아크로폴리스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건설된 이 신전은 도리스식 양식의 걸작이라고 한다. 건축 양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금은 기둥과 지붕의 일부만 남아있음에도 확실히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특히나 유명한 부분은 상부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부조작품이다. 이 부조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을 묘사한 것인데 진품은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흩어져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프랑스등과 문화재 반환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강대국에 의한 문화재 찬탈은 정말 후안무치한 일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런 문화재를 돌려주는 것에 대해서 법으로 막고 있어서 실제로 반환하더라도 장기임대 형식을 띈다고 한다.


복원을 시작한지 수십년 이상 되었을텐데 아직도 건물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복원하고 있다. 유럽을 몇 달 여행하면서 많은 곳에서 유물이나 유적을 복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느리고 지루한 작업일텐데 사람들의 손으로 꼼꼼하게 작업하고 있었다. 어떤 부분이 현재 기술로 복원이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아예 복원하지 않고 보전한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무척 시원했다. 멀리 제우스 신전이 보였다.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지만 아테네에서 최고의 신은 아테나일뿐인가보다. 제우스 신전이 무척 초라하게 보인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또하나의 걸작인 건축물 에레크테이온이다. 특히나 기둥을 대신하고 있는 6개의 처녀상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여기서는 멀리서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는 이 처녀상에 대한 전시실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였다.


나로서는 건축학적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건축물 구조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모양이긴 하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아직 복구를 마치지 못한 작은 규모의 극장이 하나 더 있었다. 완벽하게 복구된 모습보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이런 모습이 왠지 더 마음에 와닿았다.




극장의 VIP석인가보다. 


고대의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국가의 중심이자 외침으로부터 성벽의 역할도 했었던 아크로폴리스


6월초였지만 아테네의 날씨는 무척 더웠다. 게다가 그늘이라고는 없는 아크로폴리스를 오르락내리락 했더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듯한 나무밑 벤치에서 음료수를 들이키며 한참을 쉬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2007년 다시 건설되었는데 멀리서 본 건물 모양도 멋지지만 고대 유적위에 유적을 파손하지 않고 만든 생각이 기막혔다. 어떤 부분은 바닥을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서 유적을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한 수많은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단순히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시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관람객들이 지겹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박물관 최고의 유물은 파르테논 신전과 관련된 유물들이다. 박물관의 가장 위, 마지막 전시실에 실제 신전의 크기와 동일한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전 상판 4면은 작게 축소하여 원래 모습을 보여줬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나 그리스 신화에 관심있는 여행자라면 박물관을 돌아보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날에는 그리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갔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유물들은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리스 전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이 곳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특히 해저에서 발굴된, 우리에게도 유명한 조각상들이 매우 많다. 분명 사진을 제법 찍었던 것 같은데 관리를 잘못해서 지워져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아테네에서는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산토리니에서 이집트로 가기위해 잠시 들렀던 것으로, 이번에는 이집트에서 돌아와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2박 3일을 머물렀을 뿐이다. 아테네뿐만 아니라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여러 도시에는 고대 그리스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고 볼 거리들도 많다고 하니 신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다른 곳보다 그리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바하리야 사막 투어였다. 카이로에서 5시간쯤 버스를 타고 조그만 마을에서 내리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투어를 할 수 있다. 이 투어는 여행중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 투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서 그 때의 이집트 가이드와 결혼한 한국인 여자분과 가이드였던 그 남편분이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가이드를 직접하지는 않고 관리를 주로 하시지만 한국인 여행자에게 잊지못할 라면과 카레등을 만들어주신다.


카이로 버스터미널을 출발하기 직전 버스 내부. 이 날은 카이로에서 바하리야로 가는 사람이 적어서 충분히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버스는 한번 휴게소에서 쉬는데 이 휴게소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다. 뜨거운 모래 사막 한가운데 있는 휴게소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찍은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바하리야에 도착해서 투어를 운영하는 부부의 집 거실에서 쉬다가 끓여주는 라면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오후에 사륜구동 SUV차를 타고 출발했다. 바하리야 사막은 이집트의 국립공원인 듯한데 정확한 명칭을 잘 모르겠다.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한참 가다보면 사막이 검은색 돌로 덮여 있어서 '흑사막'이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한다.





이 곳에 있는 돌들은 철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검은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돌 두개를 서로 부딪혀보면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렇게 잘 정돈된 길을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길이 없는 사막을 가로질러 다닌다. 모래 언덕을 차로 넘을 때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바하리야에는 사진처럼 지금은 제대로 물이 안나오는 버려진 듯한 곳도 있고, 맑은 물이 샘처럼 솟는 곳,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는 곳 등 오아시스가 많았다. 그리고 이 물들로 농작물을 키우거나 가축을 키우고 있었다. 오아시스 주변이어서 그랬는지 이 뜨겁고 거친 모래사막에 새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눈에 띄진 않지만 사막에도 다양하고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백사막'이었다. 흰 눈이 쌓인 듯하지만 눈이 아니라 흰 석회석이다. 어째서 여기 석회 성분들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사막도 참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저녁을 먹고 텐트 안에서 야영을 했다.


석회암 언덕 위로 달이 떠오르고 있다.


바하리야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은 불빛이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별을 보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빛공해로 제대로 별이 보이지 않는 곳이 많지만 사방이 어두운 사막에서 최고의 별무리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잔뜩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걸, 이 날은 달빛이 최고로 밝은 보름달이었고 빛이 없는 사막에서는 주위가 어스름하게 보일정도로 달빛이 밝았다. 최고의 별무리를 보는 것은 아쉽게 다음으로 미뤄야했지만 최고로 밝은 달은 볼 수 있었다.



바하리야에서 사막여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다녀온 여행자들의 후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시간에 사막여우를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어느새 사막여우가 주위에 다가와 있었다. 사람들이 만든 음식냄새를 맡고 찾아온 듯싶었다. 


이날 후회하는 것은 사막여우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닭고기를 던져준 것이었다. 야생동물에게는 먹이를 줘선 안되는데 아무 생각없이 던져주고는 나중에 후회했다. 이들이 더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음식냄새를 맡고 주위를 둘러싼 사막여우들을 보니 이미 어느 정도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극도로 예민한 동물답게 절대로 사람 근처에 오거나 하진 않았다.


사진을 좀 남겨놓고 싶었는데 하도 예민한 동물이라 근처에 오거나 밝은 곳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 똑딱이 카메라로는 죄다 흔들린 사진밖에 찍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한두장 건질 수 있었다.


한창 저녁을 먹고 있는데 투어를 운영하는 이집트인 남편분이 가이드에게 전화를 했다. 가이드말은 작은 모래폭풍이 올거라고 했다.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자 멀리서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는게 달빛에 보였다. 급히 텐트에 들어갔지만 미세한 모래 입자들이 텐트틈으로 수없이 밀려들었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입안에 모래가 씹히고 콧속으로도 모래가 들어갔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텐트를 작은 석회암 언덕 아래에 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텐트안은 덥고 모래에 숨이 막히고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렇게 비몽사몽 몇 시간을 보내고 나자 어느새 바람이 그치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슬그머니 텐트밖으로 머리를 내밀어보니 달이 제법 지평선으로 기울어 달빛이 희미해지고 그틈으로 수많은 별들이 나와 있었다. 기대한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볼만했다. 갑갑한 텐트에서 나와 침낭만 깔고 석회암 바위 위에 누워서 별들을 봤다. 주위는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절대적인 고요함만 가득했다. 신기한 기분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직은 뜨겁지 않은 태양이 막 떠올랐고 주위는 사막여우의 발자국으로 가득했다. 녀석들은 모래폭풍이 지나간 후에도 먹이를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나보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바하리야에서 가장 유명한 버섯바위와 암 바위를 보는 것으로 둘째날을 시작했다. 모양이 제법 흡사하긴 한데 괴레메에서 희안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들을 많이 봐서인지 좀 시큰둥했다.


앞니가 갈라진 이집트인 가이드. 꽤나 쾌활하고 맡은 일도 열심히 하지만 가이드 중에 여자친구와 통화는 좀 줄이게나.


근처의 고운 모래언덕에서 샌드보딩을 했다. 모래가 너무 고와서 발이 푹푹 빠지기 때문에 별로 높지 않은 언덕인데도 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한 두어번 타면 힘들어서 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높지 않기 때문에 타는 재미도 썩 좋진 않았다. 다만 처음 본 고운 모래 사막이 신기할 다름이다. 샌드보딩이라면 몇 달 뒤에 경험한 페루 이까사막에서의 샌드보딩이 훌륭했었다.


모래 언덕에서 내려다본 바하이야 사막




오아시스 주변에서는 이렇게 식물들도 잘 자란다. 사막치고는 물이 꽤 풍부한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갔었던 소금호수. 이때는 바다가 융기해서 만들어졌을 소금호수가 아주 신기했었다. 그 뒤로 여행하다보니 세계에는 소금호수가 드물지 않게 있더라...


바하리야 투어를 마치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서 온몸에 묻은 모래를 깨끗하게 씻어내면 여행자에게 라면보다 먹기 힘든 카레를 커다란 국수 그릇에 가득 담아주신다. 라면과 카레만으로도 바하리야에 찾아 온 보람이 있었다.


돌아가는 버스는 무척, 그때까지 여행했던 어떤 버스보다 힘들었다. 첫째로는 올때는 비었던 버스가 이집트인들로 가득가득 찼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5시간 동안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엉덩이에 내 좌석의 반을 내준채 더 내어주지 않기 위해 도착하는 순간까지 침범하는 엉덩이를 어깨로 밀어내야한다. 마지막으로 버스의 에어콘은 많은 사람들로 전혀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운좋게 버스 좌석에 앉을 수 있다면 반드시 창가쪽에 앉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덜 시끄럽고 덜 엉덩이를 들이미는 쪽으로...


카이로에 도착하니 온 몸의 힘이 빠졌다. 게다가 일행 두 명을 터미널에 내려주고 숙소로 가기로 했던 택시기사는 그 요금은 여기까지니 숙소까지는 돈을 더 내야한다고 우겼다. 갑자기 화가 치솟아 택시기사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간섭하기 시작했다.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니 다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기사는 창피한건지 화가 난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숙소까지 데려다줬다.


이집트 여행은 피곤하다. 선조가 남긴 최고의 유적들과 볼거리가 많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여행자들을 속여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는 사람들이 여행자들을 피곤하게 한다. 분명 매력적인 곳이지만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만한 곳이다. 


여행을 마친 지금까지 후루가다를 제외하고는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행 당시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기억나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하면, 어떤 곳은 여행중에는 좋았지만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도 있다. 나에게 이집트는 후자에 가깝다. 하루를 카이로에서 쉰 뒤에 아테네로 돌아갔다.


* 카이로에서 먹었던 최고의 음식은 'EL ABD'의 샤베트와 거기서 파는 빵들이었다. 이집트 음식을 별로 색다를 것도 맛있는 것도 없었지만 이것들은 다른 곳에서 흔히 먹기 힘들만큼 훌륭했다.

이집트에 왔으니 좋건 싫건 의무적으로라도 봐야하는 한가지가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다. 여행자가 패키지나 투어를 하지 않고 피라미드까지 찾아가는 것은 방법이 조금 번거롭다. 일단, 지하철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간 다음에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방법은 단순하지만 택시를 잡고 흥정하기도 만만치않은데다 생각보다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 역시 택시를 흥정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약간의 바가지는 개의치 않는 성격이지만 똑같은 가게에서 동일한 생수 한병을 사더라도 날마다 변하는 가격 때문에 이집션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인터넷에서 본 가격만을 주장하고 기사는 터무니없다며 훨씬 높은 가격을 부르고 있었다. 그 때 지하철 뒤에서 내려온 이집션이 자기는 집에 가는 길인데 집이 피라미드 바로 앞이라며 가격을 1/n하자고 했다. 말끔한 옷차림에 인상 좋은 젊은 친구였으나 왠지 그런 인상일수록 경계가 되었다. 하지만 가격이 낮아지는데 거부할 수는 없었다.



택시는 쓰레기가 가득 쌓인 고속도로를 지나 한참을 달렸다. (정말 고속도로 가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 차가 지날 때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날렸다. 더운 택시안에서도 문을 열 수 없었다.) 피라미드가 보이는 현지인 마을에서 젊은이가 내렸다. 이 친구는 내가 한국에서 온 걸 알자 당시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스2를 꺼내 보이며 자랑을 했다. 그리고 자기네 집 옥상에서 피라미드가 무척 잘 보인다며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했지만 뭔가 썩 내키지 않아서 저녁에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보냈다. 친절한 젊은이가 동양인에게 보내는 사심없는 선의일 수도 있지만 그 선의를 무턱대고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나이를 먹으며 않좋은 것들을 너무 많이 봐왔나보다.



멀리서 봐도 거대했다. 다만 거대한 것 말고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스핑크스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는 따로 입장료를 내고 봐야하는데 근처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입장료를 내고 봐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집트 삐끼들의 호객을 넘어선 무례함은 도가 지나쳐 세계의 여행자들에게 이집트의 이미지를 많이 훼손시키고 있는데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곳에서도 그랬다. 이 작은 피라미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일단, 앞에서 들어가려고 하면 입장료를 내라고 다그친다. 이들이 여행자의 돈을 뜯으려는 것은 그들의 행색만 봐도 알 수 있다. 십대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일상복을 입은 이들에게 누가 입장료를 지불하겠는가? 


이들을 지나쳐 들어가면 다음으로는 따라오면서 가이드를 받으라고 한다. 여기는 가이드 없이는 입장이 불가능하니 돌아가라고도 한다. 앞을 막아서기도 하고 돌아가려면 다시 막아선다. 죄다 무시하고 가다보니 이젠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집트 삐끼들의 무례함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는 좀 심하다 싶어서 나도 화가 났다. 결국 이들은 내 모자를 낚아 챘다. 다행히 달아나기 전에 내가 모자를 잡고 빼았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방언을 퍼붓고 거기서 나왔다.


피라미드의 이집트 삐끼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단체 관광객이 아니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와 같다. 그런데 이집트 정부는 알면서 손 놓고 있다. 밖에는 경찰도 있고 피라미드 관리인들도 있지만 누구도 아는체 하지 않았다. 정 안된다면 정부가 피라미드 근처에 사는 이들을 교육시켜 정말 제대로 가이드로 고용하던가 아니면 통제라도 할 수 있지만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삐끼들보다 수많은 관광객으로부터 입장료를 받고도 두 손 놓고 있는 이집트 정부에 더 큰 화가 났다. 이미 여기서 피라미드는 아무런 감흥도 경외감도 줄 수 없게 되었다.



이집트에 산재한 피라미드들 중에서도 가장 크다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크다, 덥다, 삐끼들, 낙타 몰이꾼들의 호객 행위가 귀찮다. 이게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내가 느낀 전부였다. 피라미드를 나와 바로 앞 KFC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 2층에서도 피라미드는 잘 보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햄버거를 먹으며 여기서 피라미드를 보고 가는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어차피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중요한 유물들은 도굴되었거나 카이로 박물관에 있다. 얼마나 큰지 보고 고대 파라오의 권력과 이것을 건설한 인간의 힘을 느끼기에는 현시대에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너무 많다. 피라미드는 유적지로서, 관광지로서 매력이 떨어졌다.





피라미드를 보고 돌아오니 타흐릴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확성기로 뭔가를 크게 외치는 사람, 깃발을 들고 따라 외치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네 시위 모습과 똑같았다. 내가 이집트를 방문한 때는 오랫동안 독재를 해오던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권력을 빼앗기고 대통령 선거가 막 일어난 후 였다. 대통령을 선거로 뽑긴 했지만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래도 이 때는 시위가 평화롭고 심하진 않았다. 그 뒤 여행하면서 보니 서방 여기자의 폭행사건, 시위대와 공권력의 폭력등으로 정세가 무척 불안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민주화를 바랐다. 과거 독재자의 모습이 지워지고 이집트 국민들을 위한 정부가 세워지기를 바랬다. 일부 몇몇이 부를 독점하는 현재의 구조에서 궁핍한 많은 이집트 국민들에게 그것을 나눠줄 수 있는 지도자가 집권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건 요원한 일이었다. 불과 지난달 말 무바라크 대통령의 모든 협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고 이집트 민주화는 수포로 돌아갔다.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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